날짜는 네이버의 도움을 받았습네다. 실제로 1930년 3월 3일은 월요일이라서, 그 전날인 일요일에 버키가 예배를 빼먹지 않았을까 해서...
1940년 3월 3일 맑음
딱 10년 전 오늘, 나는 스티브를 처음 만났다.
그날따라 엄마는 내게 3명이나 되는 동생녀석들을 돌보라고 하신 참이었다. 13살짜리 소년이 밖에 나가고 싶지 동생 봐주느라 집에 처박혀 있고 싶겠는가. 당연히 나는 부루퉁해 있었다.가뜩이나 짜증스러운 심기에, 둘째 놈이 자꾸만 내 성질을 살살 긁어댔다. 그 때 나는 마침 옆집 맥킨지에게 빌린 새총을 들고 있었는데 그게 화근이었다.
둘째가 물었더랬다.
"형, 그 새총 뭐야? 어디서 난 거야? 나 써 보면 안 돼?"
"시끄러워."
"엄마한테 어제 예배 땡땡이 친 거 이르기 전에 나 만지게 해 줘."
"내가 왜 그래야 되는데."
"엄마! 형이 어제 예배 안 나가고 친구들이랑...."
나는 동생의 머리에 꿀밤을 먹였고, 동생은 곧장 울음을 터트렸다. 엄마가 그 소리를 듣고 내 쪽으로 오는 기미가 보이자 나는 냉큼 집 밖으로 뛰쳐나갔었다. 입에서는 중얼중얼 동생을 향한 욕이 튀어나오고, 발로는 애꿎은 돌멩이를 걷어찼었다. 그 돌멩이는 다시 걷어차려면 찾아 걸어가야 할 정도로 먼 폐건물 안으로 쏙 들어가 버리고 말았지. 나는 재수 옴 붙었다고 생각하고 침을 한 번 탁 뱉은 뒤, 그 폐건물 안으로 들어갔었다. 건물 안에 생각지도 못하게 아이들이 열대여섯 명쯤 복닥거리기에 깜짝 놀랐던 것도 생생하다.
아이들은 원을 그리며 빙 둘러싸고 있었다. 그리고 녀석들 가운데에서는 무언가를 때리는 소리와 함께 천박한 욕설이 터져나오고 있었다. 그 당시에는 나도 이미 욕을 시작한 지 꽤 된 참이었지만 정말 더럽기 그지없는 상스러운 말들이었는데. 안 봐도 뻔했다. 어느 불량배 자식이 자기보다 약한 애를 때리고 있나 보군. 더러 말리고 싶어하는 녀석들도 있었지만 엄두가 안 나는지 어쩔 줄 몰라하는 기색이고. 가소롭기 짝이 없는 광경이었다. 상황 보아하건대 몹쓸 놈은 한 명 밖에 없는 거 같은데 여럿이서 하나를 못 말려?
나는 약간 우월감을 느끼며 앞으로 나섰었다.
아, 그 때 그를 처음 보았지.
그렇게 두들겨 맞고 있었는데도 그는 신음 하나, 비명 하나 내지 않고 있었다. 상대는 그것 때문에 더욱 열이 뻗쳐 매 맞은 개마냥 날뛰고 있었다. 그에 비해 그는 마치 수모를 당하고 있는 하얗고 고고한 에로스 같았다. 어깨 뒤에 날개가 달려있지 않은 게 이상했었지.
하지만 나는 그 자식을 말려야 된다는 것도 잠시 잊고 있었어, 스티브.
왜냐하면...
젠장, 이걸 꼭 써야 하나. 일기에 적기도 낯뜨겁다. 하지만 이 일기는 온전히 나만 볼 수 있으니 일단 쓰기는 써야겠지. 그날 일은 하나도 빼놓지 않고 기억하고 싶으니까.
나중에 설령 내가 이 날을 잊더라도 이걸 보고 다시 기억할 수 있게 말이야.
내가 불량배를 막아야 한다는 것도 잠시 잊게 만든 그 강렬한 감정은 그것이었다.
저 소년은 내 거다.
지금 저 녀석을 놓치면, 제임스 뷰캐넌 반스, 너는 평생 머저리라고 너 자신을 욕해도 되는 것이다.
절대 저 아이를 남에게 주지도 말고, 줘서도 안 된다.
그 때가 내가 난생 처음 소유욕이 무엇인지 깨달은 순간인 것 같다...그리고 인정하기엔 정말 창피하지만, 성욕도.
그리고 그 강렬한 소유욕은 내 정신을 일깨웠다. 내 소년을 때리다니.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어느새 그 못된 놈을 사정없이 짓밟고 있었다. 놈은 비명을 지르고 있었고, 스티브는 어처구니 없게도.... 나를 말려서 내가 더 당황했더랜다. 발길이 느슨해지자 그 자식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뺐다.
나는 아이들이 놀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무시하고, 그의 손목, 나와 그의 첫 번째였던 그 스킨십을 가슴벅차하면서, 아름다운 손목을 꽉 붙들고 끌고 달려나왔다.
그 순간이 얼마나 나를 황홀하게 했던가.
나는 달음박질치면서, 분명 우리 둘은 지금 그림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아무 생각없이 달렸었다. 우중충한 회색과 검은색의 브루클린 뒷골목, 나는 이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년의 손목을 붙잡고 달리고 있었다.
드디어 상당히 멀리 왔다는 기분이 들었을 때서야, 나는 그를 잡았던 손목을 놓았다. 하지만 사실 나는 그를 도망치게 놔 줄 생각은 없었다. 잽싸게, 그의 양 팔을 손으로 잡아 벽에 기대게 하고 얼굴을 들이댔다.
그런데 여기까지 행동하고 나자 나는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었다. 어떡하지. 얘한테는 생전 처음 보는 애가 자기를 패던 불량배를 짓밟고 골목에 데려와서 뚫어지게 보고 있는 상황이네. 내가 드디어 미쳤구나. 이 애는 나를 이상한 애로 생각하고 다시는 안 보려고 할 텐데...
절대 그래선 안 돼.
제임스 반스, 이 상황을 어떻게서든 마무리 해 봐, 저 애를 잃을 순 없어!
그래서 나는 아직도 학학대는 소년의 팔을 붙들고, 최대한 제정신으로 보일 말을 궁리했었다.
"미안해, 아마 아까 놀랐을거야. 지나가다가 우연히 봤는데, 도저히 그냥 볼 수가 없어서.... 나를 이상한 애로 보는 건 아니지?"
그 때 말은 아직도 회상할 때마다 얼굴이 다 화끈거린다. 멍청하게, 잘하다가 어쩌자고 마지막 말을 덧붙였을까.
스티비가 그렇게 안 봐서 다행이었지.
그는 그 때 이렇게 말했었다.
"아냐... 괜찮아. 고마워. 이상하기는 무슨... 나를 도와줬는데."
나는 사실 그에게 괜찮느냐, 어디 다친 곳은 없느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저런 말을 한 뒤라 차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때, 그가 나에게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
"스티브 로저스야. 도와줘서 고마워. 이름이 뭐야?"
그 손, 그 손...
저걸 잡으면 나는 순식간에 타올라 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다음에 든 생각은 '뭐, 그래도 나쁘진 않을거야.'
13살짜리가 그 때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한 것일까. 나는 그 때 정말로 첫 눈에 사랑에 빠졌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