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애를 다시 만난 건 토요일이었다. 토요일에는 수업이 없다만 억울하게도 일찍 눈을 뜨고 말았다. 6시나 됐나, 슬슬 배는 고픈데 아직 아침식사 시간이 되려면 두 시간은 기다려야 했다. 좀 짜증이 치밀었다. 다시 잘까 하는 심정이 안 든 것도 아니었지만 이미 잠은 다 깨버렸다. 오만상을 찌푸리며 잠옷 차림에 대충 외투만 걸치고 파란 털실 목도리를 둘렀다. 물론 신발만큼은 실내화 말고 다른 걸 신은 채로.
10월 하순의 6시는 아직 어둡다. 내 손에도, 하얀 잠옷 바지에도 검은 외투에도 새벽빛이 내려앉았다. 서늘한 공기마저 새벽의 그것이다. 학교 전체가 잠든 듯이 고요한 시간에서 나 혼자만이 나무들 사이를 거닐고 있었다. 그 때 좀 떨어진 곳에서 인영이 하나 툭 튀어나왔다.
부끄럽지만 가장 먼저 든 감정은 공포였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그냥 비웃기만 했던 흡혈귀 이야기가 왜 갑자기 그 때 떠올랐는지! 그렇지만 그 순간에는 정말로 무서웠다. 물리면 아플까, 지금 도망쳐야 할텐데 하는 생각도 얼핏 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인영이 나무 그림자가 들지 않는 곳으로 나오자, 단숨에 알아보고 다리에서 긴장이 쫙 풀렸다. 그 애였다.
"깜짝이야, 놀랐잖아. 아직 6시 반도 안됐는데 여긴 무슨 일이야? 기숙사는 아닐 거 아냐."
소년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날 복도에서 만나고 들었던 생각이지만. 정말 필요하지 않은 이상은 입을 열지 않는 것 같았다. 나와 이야기하는 것 자체를 꺼리는 사람에게는 그냥 머쓱하게 웃어보이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그 때다.
"기숙사는 아니고 이 근처에서 살아."
아, 드디어 말했다. 이걸로 세번째였다. 처음 만났을 때 두 문장 이번에 한 문장. 어린아이가 걸음마를 떼는 걸 보는 기분.
"여기 사는구나."
"응."
잠시동안 어색하기 짝이 없는 침묵이 흘렀다.
"언제부터 살았어?"
"오래됐어."
"그렇구나."
와중에도 나는 소년의 표정을 살폈다. 혹시라도 불편해하면 자리를 피해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저 쪽에서 나에게 말을 걸었다.
"뭐라 안 해?"
"뭘?"
"저번에 나무 탄 거."
"아, 그거… 그냥 그럴수도 있다 하고 생각하려고."
"신고한다거나 그런 거 말야. 할 생각 없었던 거야?"
"내가 그런 걸 왜 하겠어."
"이상한 사람일 수도 있었잖아."
"내가 보기에는 넌 그냥 나무 타는 걸 좋아하는 애 같았어. 이상한 거 아니잖아."
"나는 내가 이상하게 보일 거라고 생각했어."
"그렇게까지 자기폄하할 필요는 없는데. 그런거야말로 기우라고 하는거야."
"기우구나."
순간 그가 정말로 나보다 어려보였다. 이제 갓 말을 배우기 시작한 아이라고 해야 할까, 하얗고 투명해서 금방이라도 사라져버릴 것 같은 것은 손끝에 와닿는 눈이었고 그 애는 눈으로 빚어진 소년이었다. 가만히 살짝 내리다 아침햇살에도 쉬이 사라지는 그런 것이었다.
"지레짐작이었구나."
"괜한 걱정이야."
"그럼 앞으로 나무 올라가도 되는 건가? 상쾌해서 좋아하거든."
"굳이 나한테 허락 구할 필요는 없지. 올라가고 싶으면 올라가. 대신 조심해야 돼. 다른 사람들 눈이라던가, 떨어지지 않게."
"그 정도는 나도 알아."
"사실 나도 나무 좋아해. 애들이 나더러 단풍 보느라 흡혈귀 오는 것도 모를…"
"그만 가볼게."
소년이 갑작스럽게 말을 끊었다. 칼같이 잘라내는 바람에 하마터면 알아듣지도 못하고 말을 이을 뻔했다. 어딘가 위태로워 보이는 모습으로 그 애는 빠르게 나를 지나쳐 나무들 사이로 사라져갔다. 그가 간 곳을 한참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서서히 아침 해가 뜨면서 이슬 맺힌 풀잎들이 드러났다.
그 다음날은 일요일이라 아침부터 기숙사가 분주했다. 아직도 머리에 까치집을 지고 비몽사몽인 녀석이 있는가 하면 벌써 구두끈을 매고 있는 학생도 있었다. 대개의 경우 나는 약간 빠른 편에 속했다. 오늘은 넥타이를 바로잡는 중이었고. 일요일이라고 대충 입었다가는 사감이 바로 불호령을 내릴 참이었다. 나가면서 침대 위에 놓아두었던 성경책을 집어들고 최대한 빨리 교회로 향했다.
예배를 시작하기 전에는 항상 시끄러웠다. 이 지역 사람들의 1/3 가량은 이 교회에 다녔고 거기에 각지에서 온 학생들이 끼어있었다. 나이 든 노인들의 살짝 걸걸하면서도 억양이 구불구불한 목소리, 어린 아이들의 높고 맑은 음성, 젊은 남녀의 빠른 말투를 듣다보면 속세에 나온 수도승의 기분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째선지 주변의 활기도 별 감흥을 주지 못했다. 이미 1년의 모든 일요일 동안 반복했던 일들이라고 느껴졌다. 저번주에도 본 사람들이고, 다음주에도 또 앉을 자리이고, 내가 항상 가지고 있는 옷인데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한마디로 말해 만사가 지겹게 느껴졌다는 얘기다. 내가 앉아있다는 사실 자체도 의자의 감촉도 갑자기 견딜 수가 없었다. 예배가 시작되어서 망정이지, 그냥 나가버리는 줄 알았다. 끝날 때까지 집중하지도 않고 계속 깍지낀 손가락만 응시했다.
예배가 파하고 나오면서 나가던 클래스메이트를 붙잡았다. 성경책을 쥐여주며 부탁했다. 내 기숙사에 가져다달라고. 다음 번 숙제를 베끼게 해주는 조건으로 친구는 흔쾌히 응했다. 나는 멀어져가는 그를 뒤로한 채 멍하니 걷기 시작했다.
가을 바람이 많이 서늘해졌다. 이 바람도 이제 한 달만 나이를 더 먹으면 겨울바람이 되겠지. 1년은 나이를 빨리 먹는다. 며칠 뒤면 11월이고 또 얼마 안 있어 눈이 내릴 것이다.
"진짜 미치겠네."
"뭘?"
뒤를 돌아보자 소년이 나무에 기대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 왔는지도 몰랐다. 내가 너무 주변에 무관심했던 건지, 아니면 저쪽이 고양이 같은 것인지. 혹은 둘 다였을지도.
"너였어?"
"어. 근데 왜 그러고 있어?"
"날짜 보니까 시간이 너무 빨라서. 여름방학엔 집에 가 있다가 9월에 새 학기 시작하고 저저번주에 시험치고. 좀 있으면 또 11, 12월이잖아. 1년이 금방 가."
"겨울 오면 눈 오겠지. 단풍 볼 날도 얼마 안 남았네."
"아 맞다. 내년 가을까지 버텨야지 뭐. 그런데 너는 눈 내리면 나무 못 타지 않나?"
"옷 젖고 좀 미끄러운 정도야."
"하지 마. 떨어지면 다쳐."
"딱히 걱정하는 사람도 없어."
"내가 안 괜찮으니까 하지 마."
"네가 걱정한다고?"
"그러고보니까 오늘 말 많이 한다?"
"말 돌리지 마."
"알았다고. 어쨌든 올라가지 마. 저번에도 솔직히 떨어질까봐 조마조마해 죽는 줄 알았어."
소년이 나를 빤히 바라봐서 나는 새삼 그의 눈이 얼마나 큰지 알았다. 처음 봤을 때도 크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그땐 놀라서 그런 거라고 여겼다. 그런데 이제 와서 보니 정말 크다. 너 눈이 참 예뻤구나, 문장이 방울졌다. 굉장히 맥락과 동떨어지는 주제임에도 말이 굴러 나오려고 했다. 그런데 뜬금없는 소리는 그가 먼저였다.
"내 이름 버키 반스야."
"버키 반스?"
"그냥 버키라고 불러."
"알았어… 버키. 그런데 갑자기 왜 이름은 알려주는 거야?"
"걱정해주길래."
"그건 너무 당연한 거잖아."
"일종의 영역 공유라고 생각하면 될거야. 네가 나를 신경쓴다는 건 그 사실 자체로만 머무르진 않아. 나를 받아들였다는 얘기잖아."
말을 마치고 버키는 손깍지를 꼈다가 다시 풀었다.
"그래서 나도 이름 알려준거야."
"사소한 걱정을 해준 정도인데 네가 너무 과대평가하는 거 아닐까 싶어."
"너는 초면부터 이름 알려줬잖아. 그리고 어제 새벽에도 날 이상한 사람 취급 안 했고."
"그건 네가 다쳤을까 싶어서였지. 겨우 이걸로 다 된거야?"
기준치가 너무 낮은 것 같아서 우려가 되었다. 사소한 걱정을 해준 것 뿐인데도 그는 나를 친구로 여겼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약간 질투심도 났더랬다.
"잠깐만, 그럼 나 말고 다른 친구도 있는거야?"
"아니. 너만. 왜, 신경쓰였어?"
"솔직히 말하자면 다른 애를 더 좋아할까봐."
그러자 버키는 웃었다. 동시에 나는 내가 무슨 소리를 했는지 깨닫고 얼굴이 빨개졌다. 하지만 왜 교회에서 극심한 권태감을 느꼈는지는 알 수 있었다. 예의 그 낮은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내 앞의 아이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언제 또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었었다. 교회 안에서 동시에 쿵쿵대던 수십 수백개의 심장들 중 내 것은 보이지 않는 한 사람 때문에 느리게 뜀박질하지 않았나 싶다.
10월 하순의 6시는 아직 어둡다. 내 손에도, 하얀 잠옷 바지에도 검은 외투에도 새벽빛이 내려앉았다. 서늘한 공기마저 새벽의 그것이다. 학교 전체가 잠든 듯이 고요한 시간에서 나 혼자만이 나무들 사이를 거닐고 있었다. 그 때 좀 떨어진 곳에서 인영이 하나 툭 튀어나왔다.
부끄럽지만 가장 먼저 든 감정은 공포였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그냥 비웃기만 했던 흡혈귀 이야기가 왜 갑자기 그 때 떠올랐는지! 그렇지만 그 순간에는 정말로 무서웠다. 물리면 아플까, 지금 도망쳐야 할텐데 하는 생각도 얼핏 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인영이 나무 그림자가 들지 않는 곳으로 나오자, 단숨에 알아보고 다리에서 긴장이 쫙 풀렸다. 그 애였다.
"깜짝이야, 놀랐잖아. 아직 6시 반도 안됐는데 여긴 무슨 일이야? 기숙사는 아닐 거 아냐."
소년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날 복도에서 만나고 들었던 생각이지만. 정말 필요하지 않은 이상은 입을 열지 않는 것 같았다. 나와 이야기하는 것 자체를 꺼리는 사람에게는 그냥 머쓱하게 웃어보이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그 때다.
"기숙사는 아니고 이 근처에서 살아."
아, 드디어 말했다. 이걸로 세번째였다. 처음 만났을 때 두 문장 이번에 한 문장. 어린아이가 걸음마를 떼는 걸 보는 기분.
"여기 사는구나."
"응."
잠시동안 어색하기 짝이 없는 침묵이 흘렀다.
"언제부터 살았어?"
"오래됐어."
"그렇구나."
와중에도 나는 소년의 표정을 살폈다. 혹시라도 불편해하면 자리를 피해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저 쪽에서 나에게 말을 걸었다.
"뭐라 안 해?"
"뭘?"
"저번에 나무 탄 거."
"아, 그거… 그냥 그럴수도 있다 하고 생각하려고."
"신고한다거나 그런 거 말야. 할 생각 없었던 거야?"
"내가 그런 걸 왜 하겠어."
"이상한 사람일 수도 있었잖아."
"내가 보기에는 넌 그냥 나무 타는 걸 좋아하는 애 같았어. 이상한 거 아니잖아."
"나는 내가 이상하게 보일 거라고 생각했어."
"그렇게까지 자기폄하할 필요는 없는데. 그런거야말로 기우라고 하는거야."
"기우구나."
순간 그가 정말로 나보다 어려보였다. 이제 갓 말을 배우기 시작한 아이라고 해야 할까, 하얗고 투명해서 금방이라도 사라져버릴 것 같은 것은 손끝에 와닿는 눈이었고 그 애는 눈으로 빚어진 소년이었다. 가만히 살짝 내리다 아침햇살에도 쉬이 사라지는 그런 것이었다.
"지레짐작이었구나."
"괜한 걱정이야."
"그럼 앞으로 나무 올라가도 되는 건가? 상쾌해서 좋아하거든."
"굳이 나한테 허락 구할 필요는 없지. 올라가고 싶으면 올라가. 대신 조심해야 돼. 다른 사람들 눈이라던가, 떨어지지 않게."
"그 정도는 나도 알아."
"사실 나도 나무 좋아해. 애들이 나더러 단풍 보느라 흡혈귀 오는 것도 모를…"
"그만 가볼게."
소년이 갑작스럽게 말을 끊었다. 칼같이 잘라내는 바람에 하마터면 알아듣지도 못하고 말을 이을 뻔했다. 어딘가 위태로워 보이는 모습으로 그 애는 빠르게 나를 지나쳐 나무들 사이로 사라져갔다. 그가 간 곳을 한참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서서히 아침 해가 뜨면서 이슬 맺힌 풀잎들이 드러났다.
그 다음날은 일요일이라 아침부터 기숙사가 분주했다. 아직도 머리에 까치집을 지고 비몽사몽인 녀석이 있는가 하면 벌써 구두끈을 매고 있는 학생도 있었다. 대개의 경우 나는 약간 빠른 편에 속했다. 오늘은 넥타이를 바로잡는 중이었고. 일요일이라고 대충 입었다가는 사감이 바로 불호령을 내릴 참이었다. 나가면서 침대 위에 놓아두었던 성경책을 집어들고 최대한 빨리 교회로 향했다.
예배를 시작하기 전에는 항상 시끄러웠다. 이 지역 사람들의 1/3 가량은 이 교회에 다녔고 거기에 각지에서 온 학생들이 끼어있었다. 나이 든 노인들의 살짝 걸걸하면서도 억양이 구불구불한 목소리, 어린 아이들의 높고 맑은 음성, 젊은 남녀의 빠른 말투를 듣다보면 속세에 나온 수도승의 기분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째선지 주변의 활기도 별 감흥을 주지 못했다. 이미 1년의 모든 일요일 동안 반복했던 일들이라고 느껴졌다. 저번주에도 본 사람들이고, 다음주에도 또 앉을 자리이고, 내가 항상 가지고 있는 옷인데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한마디로 말해 만사가 지겹게 느껴졌다는 얘기다. 내가 앉아있다는 사실 자체도 의자의 감촉도 갑자기 견딜 수가 없었다. 예배가 시작되어서 망정이지, 그냥 나가버리는 줄 알았다. 끝날 때까지 집중하지도 않고 계속 깍지낀 손가락만 응시했다.
예배가 파하고 나오면서 나가던 클래스메이트를 붙잡았다. 성경책을 쥐여주며 부탁했다. 내 기숙사에 가져다달라고. 다음 번 숙제를 베끼게 해주는 조건으로 친구는 흔쾌히 응했다. 나는 멀어져가는 그를 뒤로한 채 멍하니 걷기 시작했다.
가을 바람이 많이 서늘해졌다. 이 바람도 이제 한 달만 나이를 더 먹으면 겨울바람이 되겠지. 1년은 나이를 빨리 먹는다. 며칠 뒤면 11월이고 또 얼마 안 있어 눈이 내릴 것이다.
"진짜 미치겠네."
"뭘?"
뒤를 돌아보자 소년이 나무에 기대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 왔는지도 몰랐다. 내가 너무 주변에 무관심했던 건지, 아니면 저쪽이 고양이 같은 것인지. 혹은 둘 다였을지도.
"너였어?"
"어. 근데 왜 그러고 있어?"
"날짜 보니까 시간이 너무 빨라서. 여름방학엔 집에 가 있다가 9월에 새 학기 시작하고 저저번주에 시험치고. 좀 있으면 또 11, 12월이잖아. 1년이 금방 가."
"겨울 오면 눈 오겠지. 단풍 볼 날도 얼마 안 남았네."
"아 맞다. 내년 가을까지 버텨야지 뭐. 그런데 너는 눈 내리면 나무 못 타지 않나?"
"옷 젖고 좀 미끄러운 정도야."
"하지 마. 떨어지면 다쳐."
"딱히 걱정하는 사람도 없어."
"내가 안 괜찮으니까 하지 마."
"네가 걱정한다고?"
"그러고보니까 오늘 말 많이 한다?"
"말 돌리지 마."
"알았다고. 어쨌든 올라가지 마. 저번에도 솔직히 떨어질까봐 조마조마해 죽는 줄 알았어."
소년이 나를 빤히 바라봐서 나는 새삼 그의 눈이 얼마나 큰지 알았다. 처음 봤을 때도 크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그땐 놀라서 그런 거라고 여겼다. 그런데 이제 와서 보니 정말 크다. 너 눈이 참 예뻤구나, 문장이 방울졌다. 굉장히 맥락과 동떨어지는 주제임에도 말이 굴러 나오려고 했다. 그런데 뜬금없는 소리는 그가 먼저였다.
"내 이름 버키 반스야."
"버키 반스?"
"그냥 버키라고 불러."
"알았어… 버키. 그런데 갑자기 왜 이름은 알려주는 거야?"
"걱정해주길래."
"그건 너무 당연한 거잖아."
"일종의 영역 공유라고 생각하면 될거야. 네가 나를 신경쓴다는 건 그 사실 자체로만 머무르진 않아. 나를 받아들였다는 얘기잖아."
말을 마치고 버키는 손깍지를 꼈다가 다시 풀었다.
"그래서 나도 이름 알려준거야."
"사소한 걱정을 해준 정도인데 네가 너무 과대평가하는 거 아닐까 싶어."
"너는 초면부터 이름 알려줬잖아. 그리고 어제 새벽에도 날 이상한 사람 취급 안 했고."
"그건 네가 다쳤을까 싶어서였지. 겨우 이걸로 다 된거야?"
기준치가 너무 낮은 것 같아서 우려가 되었다. 사소한 걱정을 해준 것 뿐인데도 그는 나를 친구로 여겼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약간 질투심도 났더랬다.
"잠깐만, 그럼 나 말고 다른 친구도 있는거야?"
"아니. 너만. 왜, 신경쓰였어?"
"솔직히 말하자면 다른 애를 더 좋아할까봐."
그러자 버키는 웃었다. 동시에 나는 내가 무슨 소리를 했는지 깨닫고 얼굴이 빨개졌다. 하지만 왜 교회에서 극심한 권태감을 느꼈는지는 알 수 있었다. 예의 그 낮은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내 앞의 아이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언제 또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었었다. 교회 안에서 동시에 쿵쿵대던 수십 수백개의 심장들 중 내 것은 보이지 않는 한 사람 때문에 느리게 뜀박질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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