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님 커미션입니다! 아마 셀린 디옹의 My Heart Will Go On 들으시면서 읽으셔도 좋을 듯...!
어느새 내 나이가 유언장을 쓸 나이가 되었다니 세월이 빠르기만 하다. 여러 일을 겪고, 여러 감정이 켜켜이 쌓인 나날들이었다. 벌써 수십 년의 세월을 함께 해 준 나의 아내 마리아 스타크와, 내 자랑스럽고 소중한 아들 토니에게 먼저 사랑한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그리고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나의 충실한 친구였던 에드윈 자비스에게도 고마웠다는 말을 전하며, 43년 이후부터 가장 가까이 있어줬던 페기 카터에게도 끈끈한 동료애를 전한다.
스타크 인더스트리와 그 외 기타 다른 자산에 관해서는 이전에 서술해 둔 서류를 내 변호사가 맡아두고 있으니, 본론으로 들어가려 한다. 이 유언장은 내 삶, 그리고 내가 죽은 이후의 일에 관해 유언하는 내용이다.
내 장례에 대해 서술하기 전에 먼저, 내 삶에 대해, 그리고 어떤 한 사람에 대해 이야기 하려 한다. 이것은 장례 방식을 이해하는데 필수 불가결한 이야기이다.
내가 그를 만난 것은 1943년, 프로젝트 리버스라 명명된 한 국가적 비밀 프로젝트에서였다. 당시 SSR에서는 나치 독일에 맞서기 위한 슈퍼 솔저 양성 계획을 세웠는데, 그 계획의 책임자가 고(姑) 아브라함 어스킨 박사와 나, 하워드 스타크였다.
최초의 피실험자를 채택하기 위해, SSR에서는 군인 훈련 캠프를 하나 세워 특별히 모집한 여러 청년들을 그곳에서 비밀리에 훈련시켰다. 훈련 담당자가 바로 나의 오랜 친구인 페기 카터 여사와 체스터 필립스 대령이었다는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얼마 안 있어 박사와 대령은 훈련병 중 하나를 피실험자로 채택했고, 그 청년이 바로 스티브 로저스였다.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실험 전의 그는 믿을 수 없이 허약했다. 20대 중반의 나이에 겨우 43kg밖에 되지 않았을 정도였으니까. 훈련을 어떻게 감당한 것인지 놀라울 정도였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선택된 것은 어찌됐든 그였고, 나는 박사와 함께 프로젝트 리버스를 감행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그토록 허약했던 청년이 보통 인간의 4배에 달하는 신진대사와 체력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뭔지 모르게 내 마음을 끌었던 것은 그의 성품이었다.
이 유언장을 적으면서도 느끼는 것이 하나 있다. 텍스트, 글로 적는 문자로는 도저히 그의 성품을 옮길 수가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건실하다, 이타적이다, 용기 있다, 그런 단어만으로는 그를 묘사할 수 없다. 그나마 희생적이라는 단어가 근접할 뿐이다. 그것은 직접 겪어봐야 아는 것이다. 직접 곁에 있고, 그를 겪어본 사람만이 그가 얼마나 목숨을 바치고 싶게 만드는 사람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반스 병장은 그랬으니까.
반스 병장은 어릴 때부터 그의 절친한 친구였다. 지나쳐 보일 정도로 친해서, 가끔은 다른 짖궂은 코만도스 대원들이 마치 갓 결혼한 신혼 부부 같다고 놀릴 정도였다. 평소 그 둘을 가지고 장난치기를 좋아하는 나였지만 이상하게도 그 농담만큼은 치기 싫었다. 어찌되었건 그 둘은 어딜 가나 붙어 다녔다. 가끔은 페기가 질투하고, 나까지 질투심이 날 정도로. 사실 그 때부터 나는 그에 대해 호감을 느끼는 동시에, 그가 버키를 구하려고 적진에 홀몸으로 들어간 사실에 알 수 없는 질시를 알아채곤 했다.
한편 내가 시기심을 느낀 것은, 사실대로 고백하자면, 버키 뿐만은 아니었다. 어느 날부터 나는 내 절친한 친구 페기와 그 사이의 묘한 기류를 느끼기 시작했다. 내심 질투가 났고, 이번에는 버키 때보다 더욱 큰 감정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내가 그에게 서서히 느끼기 시작하는 그 어떤 강렬한 감정보다는 젊은 20대 남녀 간의 애정이 더욱 자연스럽지 않겠는가. 그저 겉으로는 그 둘에 대해 낄낄대며 놀려댈 뿐이었다. 이봐, 퐁듀 대위는 어떤가. 카터 요원이 요새는 퐁듀 얘기를 안 꺼내나 봐? 반스 병장도 이 얘기 알고 있어? 그리고 얼굴을 수줍게 붉히는 그를 보면서 속을 끓이는 수밖에.
하지만 그 때가 차라리 나을 것이라는 것을 깨닫기에는 그다지 오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내가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던 때는 버키 반스 병장(그의 시신도 끝내 찾을 수 없었다)이 아르님 졸라를 생포하는 임무에서 전사한 직후부터였다. 예전에는 그토록 가깝기만 했던 그 밝은 청년이 어느새 내 손끝이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멀리 떠나버렸다. 버키의 안타까운 죽음에 슬퍼하던 나는 스티브마저 그렇게 될까 봐 무서웠다. 나에게서 멀리, 아주 멀리 떠나서 다시는 볼 수 없게 되는 그런. 하지만 그는 더 이상 그 어떤 다른 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버키의 죽음에 대해 복수하기를 원할 뿐이었다.
페기를 보라고, 하울링 코만도스 대원들을 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나를 봐서라도 그런 목숨을 내던지는 행위는 그만하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그와 버키 사이에는 그 어떤 강력한 것, 내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것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버키가 떨어진 이후 계속해서 스티브를 그 산 밑으로 끌어당기는 듯 했다. 마치 너도 어서 오라는 듯이.
그리고 끝끝내 그가 추락하는 날이 오고야 말았다.
레드 스컬은 마침내 전 세계적인 공격을 감행하려 하고 있었다. 내가 분석해 봤을 때, 그 상황대로라면 그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은 시간 문제일 뿐이었다. SSR의 모든 이가 당황했다. 하울링 코만도스 중의 한 사람이었던 모리타의 한 마디로 그 상황이 설명될 것이다. “이제 어떡합니까? 가서 문을 두드릴 수도 없고.”
하지만 한 사람만큼은 당황하지 않았다. 스티브였다. 그가 말했다.
“왜 안 됩니까? 가서 두드립시다.”
그가 임무를 나가기 직전, 그 때 꼭 해줘야 했던 말이 있었다. 반드시 해야 했었다.
네가 나를 두고 어떻게 먼저 저승에 간다는 생각을 할 수가 있었지? 내가 그렇게 너를 걱정하고, 깊게 생각한다는 것을 너는 알고나 있었을까? 알고나 있었냐고!
그런데도 나는 그 말을 하지 않았다. 그가 무사하지 못하리라는 예감을 무시하고 싶은 안이한 마음에서였다. 그리고 나는 망설인 대가를 지금 이 순간까지도 치르고 있다.
하울링 코만도스가 임무를 떠난 후, 나는 전에 없이 안절부절 못 하고 랩 안을 왔다갔다 거렸다. 결국에는 참다 못해 SSR 본부 건물 밖으로 외투도 입지 않은 채 뛰쳐나가곤 했다. 바람이 나를 맞았지만 그렇다고 미친 듯이 날뛰는 내 속의 천불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다가 페기가 필립스 대령과 함께 다른 병사들을 이끌고 출동했을 때, 나는 참다 못해 그 병사들 중 하나에 끼어 나가려는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안 그래도 내 불안한 작태를 가만 두지 못하고 병동으로 실어 나를 기세였던 것이다. 나는 그 때 발작이라도 일으킬 듯한 상태였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나에게 물어왔다. 스타크 씨, 왜 이러세요, 괜찮으십니까? 두통약이라도 좀 드시겠어요? 스타크 씨, 스타크 씨, 스타크 씨, 하워드. 나는 그런 모든 이들에게 닥치라고 외치고 싶었다. 당신들은 아무것도 몰라. 내가 지금 어떤 심정인지.
마침내, 페기와 대령이 돌아왔다. 하지만 그들뿐만은 아니었다. 다른 하울링 코만도스 대원들도 함께 온 것이다. 간신히 버티고 앉아있던 의자를 박차, 나를 제지하는 조수를 밀치고 랩 밖으로 달려나갔다. 이제는 어쩔 수가 없었다. 더 이상 괜찮은 척은 할 수 없었다.
“스티브는? 그는 어디 있는 거야?”
듀간이 말했던 것이 아직도 기억난다.
“캡은 레드 스컬을 쫓아서 발키리에 올랐어요. 지금은 일단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애써 무시했던 마지막 예감이 불길하게 엄습해왔다. 그것은 끊임없이 그의 모습을 재생했다. 티 하나 없이 푸르르던 그의 눈, 환하게 햇살을 반사하던 그의 금발, 내 실없는 농담에 얼굴을 붉히며 쑥스러워 하는 그의 앳된 모습, 내가 만들어준 방패를 보며 신기해 하던 그, 그리고 하워드, 나를 부르는 그의 목소리…
그것들은 이제 나를 떠나려고 하고 있었다. 그 모든 기억을 안타까움과 추억으로 남긴 채.
나는 마지막 실낱 같은 희망에 매달려 레이더로 발키리를 찾으려고 힘들게 애를 썼다. 그러나 잡히지 않았다. 극지방이라 레이더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탓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이제 그를 찾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그는 마지막으로 페기와 대화를 나누리라는 직감이 찾아왔다. 아마 페기는 내가, 하워드가 도울 수 있다면서 그를 말리려 애쓰겠지. 하지만 그를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레이더 앞에서 일어나 통신실로 갔다. 어리둥절한, 혹은 이해할 수 있다는 눈빛들이 나를 쫓아올 터였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치 않았다.
통신실로 향하는 동안 생각했다. 페기와 함께 그의 마지막을 보내주어야 할까? 지금이라도, 페기와 함께 그를 말려볼까? 덧없는 생각들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다시 쓸려 내려갔다. 아니나 다르랴, 통신실에 도착하니 페기의 말소리가 들렸다. 결국 그에게 나는 끝까지 좋은 친구 하워드 스타크에 불과했던 것일까?
그 때 들어가면 아마 그와 최후의 한 마디라도 나눌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결국에는 다짐했다. 안에 들어가지 않기로.
평생 내 품 안에 안을 수 없었던 사람의 마지막마저 다른 이와 나눠야 하는 것이 싫었다.
그리고 마침내, 통신실에서 페기가 흐느끼며 나올 때, 나는 모든 것이 끝나 버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뒤로 몇 년, 아니 몇 십 년 간을 그를 찾으려 노력했지만 번번히 수포로 돌아갔다. 그래서 나는 고심 끝에 최후의 결정을 내린다. 내가 죽으면 시신을 화장해, 그 재를 스티브 로저스가 추락했지만 끝내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던 바로 그 빙하에 뿌려주기를 바란다. 이것은 나의 마지막 소원이다.
1987년 7월 4일
하워드 앤서니 월터 스타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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